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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와 이적의 김익두 목사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아버지
2012년 04월 21일 (토) 06:05:45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흔히 알려진 것 것처럼, 김익두 목사가 교인이 되기 전 그렇게 험악하게 살던 깡패나 불량배는 아니었다. 비록 몰락양반 가문이었지만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해 과거에 수차례 응시하였지만 그 시절 서북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상업계에 진출하여 평양을 오가며 장사도 해보았으나 그것도 실패하여 좌절의 청년 시절을 보내면서 술집과 기생집을 출입한 적은 있었다.


   때와 환경이 좋지 않아 자기 꿈을 이룰 수 없었던 그가 마지막으로 기댄 곳이 종교였고 그래서 불교와 선도, 동학에 심취해 ‘참된 진리’를 찾아보려 애를 썼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먼저 믿은 친구 박태환이 “영생을 가르쳐 주는 종교가 있다.”는 말에 그의 인도를 받아 안악읍교회에 나간 것이 기독교인이 된 계기였다.


   한번 믿기로 작정한 그는 예배당에 나가면서 그 좋아하던 술을 끊었는데 한번은 세상 친구들의 유혹에 넘어가 장연까지 가서 술에 만취해 집으로 돌아온 후 결심이 무너진 것을 괴로워하던 중 비몽사몽간에 ‘불덩어리가 가슴 속에 떨어지는’ 신비 체험을 하면서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


   그 당시 1년에 한번 선교사가 내려와 세례식과 성찬식을 거행하였는데 김익두는 세례를 받기 위해 1년 동안 부부가 따로 방을 쓰면서 성스런 생활로 준비하였다. 그런데 예정된 주일 선교사가 내려왔으나 교인 중에 분란이 생겨 선교사는 세례만 주고 성찬식은 집행하지 않고 돌아가 버렸다. 결국 김익두는 성찬을 받기까지 또 1년 간 ‘독방 생활’을 하며 기다렸다. 이런 믿음이었기에 그가 받은 세례는 물세례이자 동시에 불세례였고 그가 받은 성찬은 그리스도를 몸으로 모시는 사건이었다. 이처럼 ‘뜨겁고 경건한’ 신앙으로 선교사들을 감동시킨 김익두는 스왈른 선교사의 부탁으로 신천지방 개척전도자로 활약하기 시작했고 이후 별세하기까지 신천읍을 근거로 전국적은 부흥사로 활약하게 되었다.


   김익두목사가 본격적으로 부흥사역에 나세게 된 것은 1919년 삼일운동 직후였다. 온 민족이 나서 독립을 외쳤지만 일제의 잔혹한 탄압과 박해로 바랐던 독립은 얻지 못하고 대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교회당과 학교 건물이 불탔다. 좌절과 낙망의 시절이었다. 이 때 김익두목사의 부흥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당대 문필가 김인서 목사의 설명이다.


   “대정 9년[1920년] 여름이라. 길[선주]목사는 있지 않었다. 사람들은 새벽기도회에 모이면 회개하여 울고 슬퍼 울었나니 울고 울어 눈물의 집회가 되었고 낮 공부에 모히면 두려운 기운에 잠기었고 저녁에 모히면 웃고 또 울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이 모힌 때문에 다수의 회중은 김[익두]목사의 말을 잘 듣지도 못하면서 김목사의 모양만 보고 웃고 또 울었다.”


   김익두목사가 인도하는 부흥회는 웃음과 울음이 반복, 교차되는 특이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라 잃은 설움에 대한 울음이요, 그럼에도 다가오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기대감과 확신에서 오는 웃음이었다. 김익두목사는 그런 식으로 1920년대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였다. 그의 치유는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김익두목사 부흥운동의 특징은 ‘기사와 이적’이었다. 1919년 12월 현풍교회 집회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그의 부흥집회에 참석했던 각종 병자와 환자, 불구자들이 고침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는 이적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자 그의 주변 인사들이 ‘김익두목사이적명증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그의 이적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을 수집, 《김익두 목사 이적명증》이란 책까지 발간하여 “금일에는 이적을 행하는 권능이 정지되었느니라.”는 당시 장로교회 헌법을 수정하려는 운동까지 벌였다.


   김익두목사의 부흥회에 참석하여 치유를 받은 사람은 물론이고 은혜 받고 거듭난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신학자 김재준목사와 한국교회 대표적 순교자 주기철목사, 그의 대를 이어 한국교회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이성봉 목사가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그런 식으로 김익두 목사는 일제시대 암울했던 한국교회에 부흥의 불길을 일으켰다. 다만 일제말기와 해방 직후, 그리고 전쟁기간 중 불투명한 행적으로 그를 바라보던 많은 교인들을 실망시킨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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