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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를 ‘친일파가 만들어 낸 영웅’이라고?
북한에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고 남한만의 현상이라고 폄하
2014년 10월 21일 (화) 21:04:39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나라가 살아야 백성이 산다. 3·1운동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그것이 한국 민족사에 남긴 불멸의 정신이었다. 그 중심에는 유관순 열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지난 8월 교육부 주최 발행 체제 토론회에서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 상당수가 유관순 열사를 아예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같은 날 보수 성향 단체인 역사 바로 알리기 범국민 운동본부도 같은 날 토론을 했었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쓰이는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절반인 4종이 일제하에 3·1운동을 기술(記述)하면서 상징적인 인물 중 한사람인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는 한 줄도 언급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를 전공한 교과서 집필자들이 유관순 열사를 모를리 없는데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유관순 열사를 친일 경력이 있는 이화여전 선배인 박인덕이 해방 후 발굴해 이화출신 영웅으로 만든 것 이라는 논리 때문이다. 그 기록을 인용한 사람은 대표적인 좌파사학자인 김정인 춘천 교대 교수다. 이들 좌파의 속내는 따로 있다. 이들의 진짜 의도는 예상대로 북한의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북한에서는 유관순 열사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며 남한만의 현상이라고 왜곡까지 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진짜 북한도 그럴까하는 의문이 든다. 하여 유관순 열사에 대한 대한민국 좌파들의 역사왜곡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 분석해 보았다.

 

 

좌파사학자들의 게으름?

알려진 대로 북한은 지난 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소위 말하는김일성사관을 대한민국에 유포시키면서 모든 역사관을 김일성이수령이 되는 과정으로 만드는 주체사상적 사관을 심어 놓기 위해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해 왔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좌파들은 부분적으로 이러한 북한의 억지 역사를 받아들임으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문제점을 양산해 냈다는 것이다. 이를뉴 데일리에서는 좌파 사학자들의지적 게으름역사 인식의 주관성, '유관순 삭제' 근거된 논문을 읽고 라는 제하의 기사로 명쾌하게 풀었다.

좌파 사학자들의 논문에 등장하는 문구는 이렇다. “북한에서는 3·1운동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상이한 상()을 가지고 있으며, 유관순 역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고 한다. 즉 유관순을 통해 3.1 운동을 떠올리고, 일제의 무차별적인 탄압과 한민족의 저항정신을 떠올리는 것은 남한만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관순을 부각한 것은 어떤 이들일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제기된다. 남한만의 유관순이라면 그녀가 부각되어 강조된 시점은 분단을 낳게 되는 이념갈등이 표면화 된 시점 이후의 일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정상우, “3·1운동의 표상 유관순의 발굴”, 역사와 현실, 2009, p. 236.)라고.

그런데 최근에 애국진영에서 추적해 본 결과는 전혀 좌파 사학자들의 주장이 북한의 그것과도 다르다는 것이다. 모 교수는 역사 교과서에서 유관순이 사리진 이유가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이라는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있기에 기술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들이 찾아 낸 바에 따르면 그 연구 성과라는 (정상우의) 논문을 직접 살펴보았을 때 이 논문이 큰 결함을 갖고 있었음을 발견한 것이다.

논문은 유관순 열사가 북한에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고 남한만의 현상이라고 전제하면서 각주로 다른 이(임경석)의 연구를 달아 놓고 있다. 물론 그 논문도 찾아서 읽었다고 한다. 도대체 북한에서는 유관순 열사가 어찌하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건지 그 근거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논문에서 유관순이라는 단어가 딱 한 번 나오고 있었다. (어디에도 유관순이 북한에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고 설명하는 내용은 없다.) 어떻게 이 논문이, 유관순이 북한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고 이야기 하는 자료가 될 수 있는지 의아했다. 오히려 인용자가 이 논문을 읽어나 보았는지가 의문이었다.

주체사상과 깊이 연결

이 기사에서 스토리케이 이종철 대표의 연구로 밝혀진 바는 충격적이었다. 북한의 조선전사가 제시한 3·1운동사 인식은 주체사상의 명제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북한의 역사가들은 3·1운동사 서술을 통해 수령의 등장이 민족해방운동 발전의 필연적 요구였음을 입증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남한 독자층에게는 이러한 3·1운동사 인식이 생소할 것이다. ‘민족대표, 파고다공원, 기미독립선언서, 유관순 누나등과 같은 표상을 통해 3·1운동을 이해해온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조선전사의 집필자가 사실을 옳게 판단하고 그 인과적 연관을 바르게 설정했는지 궁금할 것이다.”(임경석, “3·1운동을 보는 남과 북의 시각”, 통일시론, 1999, p. 190.). 라면서 정작 북한에서조차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님을 규명해 내었다.

더 나아가 북한의 역사 교과서를 살펴보았다. 북한의 역사 교과서에서 유관순 열사가 언급되고 있지 않다면 모르겠으나 만일 언급되고 있다면, “북한에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논제는 그 논거가 매우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필자가 북한의 고등중학교 역사 교과서 조선력사를 구해서 살펴보니, 유관순 열사에 대한 기술이 이뤄지고 있었다.

북한 역사 교과서는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반일봉기에 앞장서서 싸우다가 일제경찰에게 체포된 16살의 녀학생인 류관순은 재판정에서도 재판의 부당성을 견결히 단죄하였으며 감옥안에서도 굴함 없이 싸우다가 희생 되였다.”(리인형, 조선역사6,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1, p. 24.). 라고 유관순 열사를 설명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유관순 열사를 두고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이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 성과라는 이 논문은 논지의 출발부터 허점투성이가 아닌가. 이렇듯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부실한 논문 한 편이 유관순을 역사책에서 사라지게 한 기준이 되었다니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좌파사학자들은 자신들의 텍스트인 북한 자료들에서 조차 유관순을 친일파가 소환’, ‘발굴’, ‘부각하였다는 근거가 나오고 있지 않는 것이다.

사실 북한에서는 3.1운동을 다루며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을 내세우고, 3.1운동을 실패한 원인이 탁월한 수령, 혁명적인 계급과 혁명적인 당의 령도를 받지 못한점과 부르죠아 민족주의자들의 계급적 제한성과 숭미사대주의때문이라고 설명한다. 3.1운동을 폄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북한조차도 유관순 열사는 빼놓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좌파사학자들이 의도적으로 김일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유관순 열사를 왜곡 폄하시키고 삭제까지 시켰지만 그들의 처음 문제제기인 북한에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논리는 매우 빈약해져 버렸다.

역사적 사실의 망각

유관순 열사가 민족 독립의 제단에 목숨을 바친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대도 좌편향 교과서 집필자들은 유관순 열사가 근거도 없는 친일파가 발굴했다는 이유 등으로 마치 유관순의 항일 행적이 조작되기도 한 것처럼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역사 교육을 손아귀에 쥔 세력들이 자기 입맛대로 아이들을 끌고 간다면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췄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 10년간 좌파정부가 들어서 역사전쟁을 벌이고 전교조 교사들과 좌파 사학자들의 역사왜곡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도 문제제기는 아주 적다. 이번 국정감사의 숱한 보도자료 중 유 열사와 관련된 건 딱 1건이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의 '일본 교과서에는 있고 우리는 없는 유관순' 하나뿐이다. 교육위는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뿐 아니라 산하 기관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제대로 된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면 유 열사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하지 않을까. 유 열사의 국사 교과서 실종 사건은 좌파 역사학자들의 유관순 죽이기와 다를 바 없다. 고교 교과서 4종의 채택률이 59%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고교생 10명 중 6명은 17세에 독립운동을 외친 '소녀 유관순'을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셈이다.

한 의원이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으로부터 받은 국감자료에 따르면 일본 교과서의 유 열사 설명 비중은 상당했다. 고교만 놓고 보면 일본근현사(일본사A) 교과서 7종 중 4종이 유 열사에 대해 서술했다. 과거사를 왜곡·부정하는데 거리낌 없는 일본이 이 정도다. 우리의 실상은 어떤가. 국사 교과서 검정 문제점이 속속 드러난 뒤 국정 전환을 놓고 반짝 논쟁이 벌어졌지만 채 한 달도 안 돼 없던 일이 돼버렸다.

돌이켜보면 의원들만 탓할 일은 아니다. 유 열사는 독립운동가 중 유일하게 일제의 재판 자체를 거부했건만 그 역사적 사실과 의미는 전혀 부각되지 않아왔다. 정부는 유 열사에게 1962년 건국훈장을 추서했건만 훈격은 3등급에 그쳤다. 훈격이 낮다 보니 지난 9월 천안 병천에서 열린 순국 94주기 추모제에서 대통령의 헌화는 없었다. 유관순열사 기념사업회(회장 곽정현)의 거듭된 항변에도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 우리 스스로 역사를 지켜낼 의지가 없다면 '유관순 역사 전쟁'에서 승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면 역사적 사실을 망각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 현대사는 정의가 실패한 역사였다"라는 좌파의 궤변이 정당화되고 만다. 당장 일본이나 중국과 벌이고 있는 역사전쟁에서의 패배도 보나마나다. 지금 대단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건만 그런 사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게 더 문제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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