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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박원순은 왜 ‘김구’만 기념했을까?
2015년 08월 22일 (토) 14:41:58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무장독립투쟁만 은연 중 부각, 외교독립노선 이승만·안창호는 외면

 
 

 

서울시청 신청사 외벽에 설치된 김구선생과 태극기 조형물. ⓒ 뉴데일리DB
▲ 서울시청 신청사 외벽에 설치된 김구선생과 태극기 조형물. ⓒ 뉴데일리DB

 

 

지난 8월15일 광복 70년을 기념하는 행사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서울 도심의 대형빌딩에는 광복 70년을 축구하는 문구와 함께 초대형 태극기가 내걸렸고, 도로에는 다채로운 디자인의 태극기 조형물들이 설치됐다.

 

서울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울시는 자체적으로 ‘광복 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추진단’이란 기구까지 만들면서 중앙정부 못지않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시립미술관을 비롯한 시 소속기관들도 다양한 전시회와 기념행사를 준비했다. 시청 신청사 외벽에는 김구 선생이 태극기를 들고 환하고 웃고 있는 조형물도 설치됐다.

광복 70년이란 역사적 사건을 기념해, 독립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김구 선생과 태극기를 조합한 조형물이, 시 청사 외벽을 장식한 것은 크게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광복 70년의 의미를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 김구 선생과 태극기를 함께 넣은 조형물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구 선생이 태극기를 들고 있는 조형물을 보면서,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김구 선생이 태극기를 들고 환하게 웃는 대형 조형물은, 마치 김구를 중심으로 한 무장투쟁이 독립운동의 전부라는 인식을, 시청 앞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말없이 각인시키고 있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인식이다.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일본의 압제에 맞서 무장독립투쟁을 이끈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은 분명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해방’의 상징이다.

그러나 ‘해방’은 김구 한 사람의 헌신과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민족 계몽에 헌신한 도산(島山), 민족의 상고사를 새로 쓴 단재(丹齋), 미국정부와 오피니언 리더를 상대로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한 우남(雩南) 등 총과 도시락 폭탄을 들지 않았을 뿐, 전 생에를 바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쓴 이들은 많다.

이들 모두 해방과 독립의 상징적인 존재들이다.

서울시가 한반도의 해방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 중, 유독 김구 선생만을 선택해서 광복 70년을 기리는 대형 조형물을 설치한 사실은, 무장독립운동만을 부각시키고, 교육과 계몽, 외교적 방법을 통해 독립운동을 펼친 애국지사들을 폄훼하는, 좌파 역사학계의 근현대사 인식과 닮아있다.

우리 국민들은 언제부터인가 ‘독립운동’하면 김구 선생이 이끈 무장투쟁만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반면 도산과 단채, 우남과 같은 비무장 독립운동에 힘쓴 위인들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졌다. 특히 중국이 아닌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이들에 대한 기억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미주 독립운동을 이끈 이승만, 서재필 박사. 1921년 미국 워싱턴DC. ⓒ 뉴데일리DB
▲ 미주 독립운동을 이끈 이승만, 서재필 박사. 1921년 미국 워싱턴DC. ⓒ 뉴데일리DB

 

국민적 인식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서 중국 전역을 떠돈 임시정부 청사를 복원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미주지역 독립운동사는 그 의미를 재조명하려는 뜻있는 극소수 시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국민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다. 한 술 더 떠 미주 독립운동 자체를 비하하는 시각도 늘어나고 있다.

무장독립투쟁의 역사적 의미를 객관적 가치 이상으로 과대포장하면서, 외교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들을 무시하는 현상은 ‘해방 70’년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상당히 왜곡돼 있음을 보여준다.

독립운동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마치 기본상식처럼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진 배경에는, 반(反)대한민국적 사고를 가진 좌파 역사학자들의 등장이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수치스런 역사로 여기고,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라고 폄훼하면서, 이와 대조적으로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 민족의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역사관을 갖고 있는 친북적 민중사관은, 1980년 중반 이후 한국 역사학계와 교육계를 장악했다.

친북적 민중사관을 신앙처럼 받아들인 역사학자와 역사교사들이 대학 강단과 학교 교실에 서면서, 독립운동은 김구가 이끈 무장투쟁만이 남게 됐다.

민중사학자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이 가담한 무장독립투쟁은 신성시해야 할 역사가 될 수밖에 없다.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공산주의자들이 훗날 북한 정권 수립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암살’의 흥행 성공은,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진, 독립운동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투영된 결과다.

사실 김구 선생이 주도한 무장독립투쟁은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해방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안중근·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잇따른 의거는 국가를 잃어버린 한민족에게 큰 영감과 감명을 줬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한반도의 해방은 한민족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2차 대전 승전국 정상들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됐다. 한반도의 신탁통치도, 38선을 기점으로 한 미소 양국의 분할 점령도, 모두 2차 대전 승전국 정상들이 결정한 사안일 뿐, 여기에 한민족의 의사는 반영되지 못했다.

김구 선생의 무장독립노선이 정서적으로 한민족에게 영감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무장독립노선의 분명한 한계이기도 했다.

오히려 2차 대전 승전국들이 한국의 독립을 의제로 삼게 된 이면에는, 미국 정부가 한국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기여한 미주 독립운동가들의 보이지 않는 공헌이 있었다.

이렇게 볼 때, 김구와 상해임정이 독립운동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현재의 모습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북적 민중사학자들은, 무장독립노선을 제외한 그 밖의 독립운동은 의도적으로 그 의미를 축소·왜곡하고 있다.

특히 우남 이승만 박사가 주도한 외교독립노선은, 친북적 민중사학자들로부터 철저하게 매도당했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수치스런 역사로 받아들이면서 민족의 정통성이 북한 정권에 있다고 믿는 민중사학자들에게, 소련 스탈린의 지령을 받은 북한 김일성의 계략을 꿰뚫어보고,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은 이승만은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다.

더구나 민족의 정통성이 북한 정권에 있다고 믿는 민중사학자들에게, 대한민국을 세운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역적이나 다름이 없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배포한 동영상 백년전쟁. 역사적 사실을 조작해 이승만 대통령을 폐륜범·친일파로 매도해 물의를 빚었다. ⓒ 뉴데일리DB
▲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배포한 동영상 백년전쟁. 역사적 사실을 조작해 이승만 대통령을 폐륜범·친일파로 매도해 물의를 빚었다. ⓒ 뉴데일리DB

 

 

동영상 백년전쟁의 역사왜곡 사실을 지적한 자료. ⓒ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 동영상 백년전쟁의 역사왜곡 사실을 지적한 자료. ⓒ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민중사학의 산실 역할을 한 ‘민족문제연구소’가 ‘백년전쟁’이란 동영상을 제작·배포하면서, 이승만 박사를 나치정권의 괴벨스에 비유하고, 이승만 박사의 발언과 미국에서의 행적을 악의적으로 왜곡·편집한 사실은, 이승만 박사에 대한 민중사학자들의 적대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심지어 동영상 백년전쟁은, 다큐멘터리라는 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해 이승만 대통령을 파렴치한 친일파로 비하했다. 반면 민중사학자들이 장악한 한국의 역사학계는 김구 선생을 신격화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보수우파의 원조인 김구 선생을, 좌파정치권이 성웅처럼 떠받드는 웃지 못 할 코미디가 벌어지는 현실은, 좌편향된 역사관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한민국의 국부(國父)를 인격적으로 욕보인, 문제의 동영상 백년전쟁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 설립을 주도했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백범과 태극기 조형물이 서울시청 정면에 내걸린 데에는, 박원순 시장의 그릇된 근현대사 인식이 스며들어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의 근현대사 인식은, 서울시가 만든 ‘광복 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추진단’을 통해 이미 드러났다.

위 추진단이 만든 국세청 남대문 별관 철거 공사 가림막에 인쇄된 ‘광복 70년’ 역사 연표는, 반(反)대한민국적 가치관을 뚜렷하게 드러내 물의를 빚었다.

 

국세청 남대문별관 철거 공사 가림막에 인쇄된 ‘광복 70년’ 역사 연표. ‘광복 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추진단’이 문구와 이미지 등을 만들었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국세청 남대문별관 철거 공사 가림막에 인쇄된 ‘광복 70년’ 역사 연표. ‘광복 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추진단’이 문구와 이미지 등을 만들었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4월26일 교사 이O호는 대학생 강경대가 경찰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수배 은신처에서 나와 녹음 짙은 연세대로 향했다. 1991년.

4월1일 철원에서 경계병으로 근무하던 육군일병 김O윤은 서울올림픽 요원으로 차출되자마자 짐을 싸서 서울로 실려 갔다. 1988년.

9월22일 대학생 김O조는 서울아시안게임 탁구시합(서울대 체육관) 때문에 휴교조치를 내려 폐쇄된 교문 앞에서 도서관에 들여보내 줄 것을 요청하다 전경버스로 연행됐다. 1986년.

1. 구로공단 노동자 연대투쟁
2. 을지로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규탄. 1985년.

6월2일 아일랜드 유학생 양O승은 미국 대통령 레이건 명예박사학위 수여에 반대하는 인구 4만명 골웨이 시민들의 긴 행렬을 봤다. 1984년.

가발공장 노동자 최O영은 설날, 추석날, 3.1절, 광복절 정도를 빼고는 대부분 휴일 없이 일을 했다. 1973년.

11월 13일 청계피복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했다는 소식을 어머니 이소선은 오후 두시 라디오뉴스로 들었다. 1970년.

10월3일 개천절날 베트남전에 파병된 백마부대원 안O호는 매복작전 성과를 장기복무하는 분대장에게 양보한 뒤 돌아와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다. 1966년.

1985년 4월 3일 고등학생 고O민은 집안에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는 친척을 보았다. 그날에야 아버지가 4.3사건 당시 경찰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948년.

연탄공장에 다니던 황O용은 10월1일 저녁 대구시청 근처에 나갔다가 총에 맞아 쓰러진 뒤 일어나지 못했다. 1946년.


위 문구들은 국세청 남대문 별관 공사 가림막 외벽에 인쇄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광복 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추진단’이 만든 위 문구에는 대한민국에 대한 반감을 넘어 적대감이 스며들어 있다.

1991년을 기념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시위에 나섰던 대학생이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일이고, 40대 이상 세대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돼 있는 서울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역시, 국민의 인권을 침해한 사건에 불과하다.

1985년 가장 큰 사건은 노동자들의 투쟁과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이고, 1984년을 기념하는 사건으로는 엉뚱하게도 미국 레이건 대통령 명예박사학위 수여를 반대한 아일랜드 시민들의 시위가 ‘선정’됐다.

산업화의 기적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 속에 이뤄졌고(1970년, 1973년 기념 문구), 월남전은 참전 군인들에게 고엽제 후유증을 남긴 추악한 전쟁에 불과하다(1966년 문구).

대한민국이 건국한 1948년을 기념하는 문구는, 당혹스러움을 넘어 이질감마저 느끼게 한다.

“1985년 4월 3일 고등학생 고O민은 집안에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는 친적을 보았다. 그날에야 아버지가 4.3사건 당시 경찰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948년.”


1948년은 대한민국이란 신생 독립국이 국가로서 역사를 시작한 첫해다. 그러나 ‘광복 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단’은 1948년을 기념하는 사건으로 대한민국의 건국이 아닌, 제주 4.3사건을 꼽았다.

대한민국 건국을 막기 위해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북한 김일성 정권의 지령을 받아 저지른 공산 폭동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제치고 1948년을 기념하는 사건으로 선정된 것이다.

이쯤 되면 1946년을 기념하는 사건으로 ‘대구 10.1 폭동’이 선정된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서울시가 만든 ‘광복 70주년 기념 문구’는 공통적으로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이들 문구에서 광복 70주년에 대한 축하의 의미를 찾기란 어렵다.

이들 문구가 설명하는 ‘광복 70주년’은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착취한 역사이며, 계급투쟁의 역사이고, 국가가 국민을 억압하고 인권을 침해한 폭정의 역사일 뿐이다.

반대한민국-친북-반미적 시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광복 70주년 기념 문구’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건국을 비롯한 한국현대사에 대해 자긍심을 갖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서울시가 ‘광복 70주년’을, 반대한민국적 사고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선정 선동의 도구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광복 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시민위원회 위원장은 이만열 숙명여대 교수다.

이만열 교수는 과거 ‘종북세력은 없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대표적인 좌파 역사학자다. 이만열 교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동영상 백년전쟁‘에도 출연한 이력을 갖고 있다.

김구와 이승만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와 역사적 왜곡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면, 김구에 대한 재평가도 필요하다.

각각 무장독립투쟁과 외교독립노선을 상징하는 김구와 이승만은 모두 독립에 기여한 유공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시청 앞에 김구의 태극기가 걸렸다면, 그 옆에는 응당 이승만의 태극기도 걸렸어야 했다.

 

이승만 박사의 친필 서명이 있는 태극기 우표. ⓒ 뉴데일리DB
▲ 이승만 박사의 친필 서명이 있는 태극기 우표. ⓒ 뉴데일리DB

 

 

이승만 박사의 태극기 우표를 붙인 우편 봉투. 봉투 겉면에 ‘FREEDOM KOREA’라는 문구가 인쇄돼 있다. ⓒ 뉴데일리DB
▲ 이승만 박사의 태극기 우표를 붙인 우편 봉투. 봉투 겉면에 ‘FREEDOM KOREA’라는 문구가 인쇄돼 있다. ⓒ 뉴데일리DB

 

‘광복 70’년의 또 다른 의미인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의 ‘건국’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건국대통령이자 국부(國父)인 우남 이승만을 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제쯤 백범과 우남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까?

한국정치사상사의 대가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의, 김구와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구는 가슴으로, 이승만은 머리로 살았다. 열렬한 가슴의 투사는 머리로 근성 있게 살아가는 사람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서울시청 외벽에 설치된 백범의 태극기 조형물은 해방 70년, 건국 67년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가야할 길이 아직도 멀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양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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