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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를 기억하라
신32:6-7 설교자: 진동은 목사
2010년 06월 20일 (일) 18:37:05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금년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문제로 6.25를 맞이하는 의미가 특별하다고 생각됩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서명을 했으나 지금도 여전히 6.25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6년 전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북한의 남침문서를 전달했습니다. 이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누가 후에 그 극비문서가 세상에 그대로 공개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은 역사 앞에 진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년은 무엇보다 안보의식의 정립이 필요한 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 한쪽에서는 젊은이들이 김일성, 김정일을 흠모한 나머지 6.25는 조국해방전쟁이었다고 찬양을 하고 있으니 아무리 민주주의 사회지만 너무 철이 없다 싶습니다. 우리는 긴장 속에서 60번째 6.25 기념일을 맞이하면서 다음의 몇 가지 교훈을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첫째는 민족의 그 아픔을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에 배고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먹을 것이 풍부해진 뒤에도 그 때를 망각하지 않습니다. 그 때를 망각하면 또 다시 그 아픔의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농사를 지어 먹을 것이 풍성해도 밥을 먹고 난후 밥알을 남기는 것을 죄로 여겼습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혜 있는 삶입니다. 고생은 사람들에게 한때 아픔을 주지만 어떤 면에서는 일생을 살아가는데 아주 좋은 경험이 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 고 고백했습니다. 오늘의 그 실패가 내일에 살아남게 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갖게 하는 힘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공했다는 인물들은 모두가 그 옛날 쓰라린 경험을 했던 사람들 입니다.

6.25이후에 우리민족이 이루어낸 발전은 참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 기적의 원천은 과거에 당했던 아픔의 역사가 기반이 되어준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민족에게 자생력과, 인내력과 개척정신을 길러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6.25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1950년 6.25의 공식적인 피해상황은 남북한과 유엔군의 사상자가 300만 명입니다. 이산가족이 1,000만이며 재산피해는 말할 수도 없이 모두를 잃었습니다.

6.25 때 영천 고개를 넘어 이북으로 끌려가던 납북 행렬은 민간인들이 4열종대로 쇠사슬에 묶여 4,500미터나 되는 긴 행렬이었다고 합니다. 아사자와 병사자 그리고 폭격으로 말미암아 죽은 백성들의 시체가 들과 거리에 아무렇게나 널려졌고 걸을 때 마다 쇠사슬 소리는 요란스럽고, 한 구덩이 속에 어린이까지 100명씩 생매장하던 생지옥이었다고 합니다. 실로 6.25동란이야말로 우리 한국 민족 사상 최악의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경제 문화가 발전하고 아무리 번영한대도 그 처참하게 죽어간 애국자들과 순교자들의 모습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즘에 와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 6,25가 일어난 것도 알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우리민족이 고생은 많이 했지만 공산주의에 대해서 그 실체를 아주 뼈저리게 경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이 땅에 공산주의만은 안 되겠다 해서 반공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실패한 공산주의 망령에 사로잡혀 6,25가 북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은 일요일이었고 남한의 군인들은 휴일을 맞아 부대 밖으로 외출을 했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잘 훈련받은 인민군이 비행기와 탱크를 앞세우고 순식간에 남한으로 물밀듯 쳐내려왔습니다. 남한의 정부는 수원으로, 대전으로, 대구로, 급기야는 부산으로 국민들을 피난시켜야만 했습니다. 그야말로 남한이 공산당의 천하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한국으로부터 구원병을 요청하는 전문이 미국의 투르먼 대통령에게 당도했습니다. 투르먼 대통령은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 일어나 밤새도록 고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의 결정 하나에 따라서 미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피를 흘려야 할 것이요, 그에 따라 한반도의 정세가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남한이 공산치하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다. 한국동란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길이다.” 이렇게 미국군대가 손쉽게 참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한 정치가가 밤새껏 기도하는 가운데 내려진 결정에 따라 참전한 것입니다. U.N군이 한국에 참전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6월26일 미국 트루만 대통령이 소집한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U.N군의 한국참전 여부를 결정할 때, 상임이사국인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U.N이 한국에 군대를 파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아침 소련대표 아담 마리크는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해서 거부권을 행사하려고 캐디락을 타고 뉴욕거리를 오는 데 이상하게도 엔진이 꺼져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만져도 안 되고 결국 고쳐가지고야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안전보장 이사회에서는 한국참전을 만장일치로 결정한 뒤였습니다.

세 번째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6,25전쟁 60주년을 맞이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이 사회에 대해서 경각심을 일깨우는데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나라의 위기가 오면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침착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공산주의만은 막아야 합니다.

어느 역사가는 6,25를 "공산주의와 기독교와의 싸움이었다"고 정리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6,25 때 가장 수난을 많이 당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일제시대와, 그리고 6,25 사변 동안에 가장 극심하게 핍박을 받고, 수난을 당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공산주의는 기독교에 대해서만큼은 무자비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공산화가 된다고 해도 그런대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들은 공산주의 사회나 민주주의 사회나 어디서나 적응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념적으로이나 신앙적으로 공산주의와는 함께 공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산주의의 실체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전쟁은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전쟁이고 또 하나는 이념 전쟁입니다. 종교전쟁은 거기에 사명성이 있고, 당위성이 있기 때문에 한번 벌어지면 무서운 전쟁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전쟁이 끝이 없는 것입니다. 피차 순교는 할지라도 항복은 없습니다. 이념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념전쟁에는 협상이 없습니다. 종교전쟁에는 체면이 우선이고 인도주의라는 것이 있지만, 이념전쟁에는 체면도 인도주의도 없고 잔인성과 포악성만 존재합니다. 그래서 6,25전쟁은 타민족도 아닌 동족끼리 서로 죽이는 끔찍한 전쟁으로 발전되었던 것입니다. 교회만 280개가 파괴되었고, 순교하고, 납치된 교역자만도 250명이나 됩니다. 충남에 가면 병촌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는 6,25가 터지고 나서 7월16일 66명이 모여서 주일예배를 드리다가 공산군들이 들어 와서 무차별 난사를 하는 바람에 모두 사살 당했습니다.

그 중에는 유년학생이 21명이나 있었고, 유아도 5명이나 들어 있습니다. 이 66명은 다 한 동네 사람들이었고, 또 한 집안이었고, 한 가족이 많았습니다. 어떤 집은 한 가정의 11명이 그날 순교한 집안도 있습니다. 그 66명이 어떻게 죽었느냐 하면 낫과 쇠스랑과 망치로 무자비하게 맞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같은 날 전남 영암교회에서는 83명이 예배를 드리는 도중 모두 사살 당했습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인간도, 생명도, 존엄성도 없습니다. 이것이 공산주의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이것은 일반 사람들보다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더 절박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항상 기도해야 할 일 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땅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한번 가정을 해 보십시오.

북의 미사일이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에 떨어지면 즉시 우리의 미사일이 영변에 있는 핵저장소에 떨어질 것입니다. 미사일 한대씩만 주고받으면 피차가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유태인의 명언 중에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 말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2차 대전 당시 독일 아우슈비치 수용소에 수만의 유태인들이 가스 살해를 당하고 전쟁이 끝난 후 유태인의 랍비가 수용소입구 벽에다 써놓은 말이라고 합니다. 북한이 마지막 코너에 몰리면 의례 해오던 국면이 지금도 우리 사회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너무 들뜰 것도 없고, 흥분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 주어져도 의연하게 대처해 가야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국론을 모으고, 국민은 흔들리지 말고 할 일을 더 열심히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참 크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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