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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에 대한 오해
2010년 01월 11일 (월) 13:43:50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최근 각 교단들이 총회를 개최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외치는 것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자들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언제부턴가 한국교회는 내외적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많아졌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찾는 것이 초대교회다. 물론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견해에도 두 가지 모델이 제시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 하신 이후 세워진 예루살렘교회와 이방지역에서 처음으로 세워졌던 안디옥교회다. 한국의 교회도 예외 없이 이들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시작되었다.

최초의 선교사인 토마스로부터 수많은 순교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 중에는 한국에 오기 전 이미 더 혹독한 지역에서의 선교를 경험했으며 ‘아내’를 잃거나 가족을 잃은 분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오늘날 한국이 세계적인 기독교국가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이들은 한국(조선)에 대한 불같은 선교의 소망을 품고 중국이나 인도 등지에서 그 열정을 불태워 갔고, 결국 그들은 한국교회의 눈부신 부흥을 일궈 내는 초석을 닦았다.

당시만 해도 이미 전 세계 많은 나라에 선교사들이 파송되었다. 일본이나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은 물론이고 인도 외에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선교사들은 자신의 목숨을 드리면서 생명의 복음을 들고 찾아갔다. 그런데 먼저 복음이 전파된 일본의 미비한 복음화율이나 중국의 공산화 후 교회들에 비해 한국이 비약할 만한 성장을 가져온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견해가 있었을 것이나 아무래도 ‘초대교회’의 모델을 따르는 신앙의 각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본다.

한국교회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원산대부흥과 평양대부흥의 이면에는 강력한 회개운동이 있었다.

회개와 용서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이 초대교회 부흥의 비결이었듯이 한국교회 역시 ‘나 부터 먼저’ 회개를 시작하고 통회자복을 통해 교회를 세우고 성도 자신을 세웠던 것이다. 한국 가톨릭교회가 순교자들의 피를 통해 교회를 세웠노라고 한다면 한국의 개신교회는 강력한 회개가 그 주춧돌이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성령강림 이후 교회가 세워졌는데, 성령충만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모든 청중들이 ''우리가 어찌 할꼬'' 회개하며 나아와 예수를 믿고 세례를 (행2:38-41)받았다는 말씀이 등장한다. 작은 자들로 시작한 기도의 무리들이 나중에는 3천명을 헤아리게 되는 역사가 일어 난 것이다.

그 폭발력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성경에는 ‘권능’이란 말을 ‘두나미스’라고 표현했다. 이 말을 현대적으로 바꾸어 부르자면 ‘다이너마이트’다. 한 마디로 회개를 통한 강력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했다는 말이다.

초대교회는 제자들로부터 세워지거나 사도바울을 통해 세워진 교회들 외에 ‘두란노 서원’같은 곳에서 집회에 참석 한 후 돌아가 세워진 자생교회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 교회들의 공통점은 회개와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조직이 갖춰지거나 성경보급이 없었음에도 성경에 비춰진 그들의 모습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예배하며 모이기에 힘쓰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임이 분명했다.

자발적인 헌신과 사랑이 있어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교회이며. 하나님께 먼저 인정을 받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는 교회였던 것이다.

이런 초대교회의 전통이 한국교회에도 존재했었음은 물론이다. 회개가 강력하게 일어나자 평양시내의 술집에는 발길이 끊겼으며 절제운동과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기도에 대한 열정이 일어나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새벽기도 운동이 일어났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를 돌아보면 ‘초대교회’의 이러한 뜨거운 열정은 식어가고 그저 ‘부흥의 열매’만 취하려고 드는 것 같다. 비판과 정죄의 문화는 있으되 통회자복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면 참 많은 일들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 절차들을 무시하고 ‘부흥’을 하자거나 몇 만 성도 배가 운동’을 하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본다. 초대교회의 여러 아름다운 모습들을 제대로 따를 때 우리는 진정한 부흥의 열매를 경험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양대부흥운동 때도 그러했고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이나 1973년도 빌리그레이험 여의도 집회, C.C.C가 주최한 1974년의 ‘엑스폴로 74 대회와 1980년의 ‘세계복음화대성회’까지 회개와 절제가 동반되지 않은 부흥운동은 없었다.

또한 그 시대에 맞춰 한국교회의 새로운 각성을 촉구, 그때까지의 분열의 추태를 지양하고 단합된 모습으로 민족에 봉사 하자는 진정성이 있었다. 일시적으로나마 교단, 교파간의 연합(에큐메니컬)운동을 가능케 한 ‘민족복음화운동’을 꽃 피웠던 것이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말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그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몸부림 쳤던 한국교회의 역사 속에서 그 해답을 찾고 이제라도 통회자복을 통해 선교사들의 순교로 세워진 교회를 다시 세우는 그런 총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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