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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는 믿음
요한복음 11장 38-44절 진동은 목사
2010년 10월 01일 (금) 00:09:57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예기치 못한 아주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도 있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러한 현실 앞에서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지막이 하나님의 시작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하나님의 축복의 기회로 만드는 큰 믿음의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위대한 전도자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은 믿음은 당신을 하늘로 인도하지만 큰 믿음은 하늘을 당신에게로 인도할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능력을 행하는 큰 믿음의 원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베다니의 삼남매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는 예수님과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당장에 달려 가셔서 고쳐주셨을 터인데 그때는 예수님이 급히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사로는 죽게 되었고 이미 무덤에 있은지 나흘이 되던 시점에 오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나가서 예수님을 만나 말했습니다. 21-22절 에서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제라도’라고 말하는 신앙은 귀한 신앙입니다. 그러나 그 고백에서 마르다가 하나 잘못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22절 말씀 끝부분에 나오는 ‘아나이다’라는 말입니다. 그 말이 ‘믿나이다’로 고쳐져야 합니다. 신앙은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연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을 많이 알아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않으면 불안은 깊어집니다. 바로 인간의 불완전한 지식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으려고 하면 하나님과 멀어지지만 하나님을 믿고 알려고 하면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물론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아는 것에만 치중하면 믿음이 주는 힘과 능력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알기보다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려고 해야 합니다.


2. 신앙은 현재의 믿음입니다.
마르다의 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23절 말씀에서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마르다가 24절에서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바로 조금 전에 ‘이제라도’라고 말했는데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살리라!”고 말하니까 ‘이제라도’의 고백은 사라지고 ‘마지막 날 부활에는’이라고 말합니다.하나님은 먼 장래의 천국과 축복만 약속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현재도 우리의 축복을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지금, 여기서, 내게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내세에 대한 소망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누려야 합니다. 미래의 소망도 현재를 멋지게 사는 능력의 원천으로 삼는 신앙이 큰 믿음입니다. 미래의 부활만 생각하고 현재의 부활을 믿지 않는 마르다의 신앙을 보고 답답했던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아주 구체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그 질문에 마르다는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물론 마르다의 이 말은 진리의 말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주님의 질문과는 전혀 다른 대답입니다. 즉 주님은 “네가 부활을 믿느냐?”고 질문할 때 “예! 부활을 믿습니다!”라고 구체적으로 대답해야 하는데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습니다.”라고 교리적으로 대답한 것입니다. 신앙은 지금 여기서 나타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3. 큰 믿음은 환경을 극복합니다.
믿음이 없는 답답한 마르다의 신앙을 보고 예수님은 대신에 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31-32절에서 마리아는 급히 예수님 앞에 나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는 자세는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사실 모든 기적의 시작은 바로 이 자세에서 출발합니다. 그렇게 엎드려 울자 예수님도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무덤에 가셨습니다.

무덤은 굴이었는데 돌로 막혀져 있을 때 본문 39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왜 예수님은 모든 기적을 다 홀로 일으키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습니까? 그것은 기적을 이루시기 전에 사람으로부터 한 조각의 믿음을 받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그처럼 믿음을 원하시는 예수님의 심정도 모른 채 그때 마르다가 또 끼어들었습니다.
본문 39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이 마르다의 고백을 보면 마르다의 신앙은 ‘환경만 보는 신앙’을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환경을 보면 넘어질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을 보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환경은 힘들어도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과 미소’를 잊지 마십시오. 그런 굳건한 믿음을 가진 성도에게 하나님은 축복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그런 믿음의 원리를 깨닫지 못한 마르다의 모습에 답답하셨던 예수님은 마르다를 질책하셨습니다.
본문 4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그 말과 함께 누군가 돌을 옮겨놓자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큰소리로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나사로는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능력 있는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는 것’입니다. 내게 비록 재능과 재물은 없어도 하나님이 최선의 것을 주실 것을 믿고 열심히 땀을 흘리면 하나님께서 넘치게 채워주시는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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